때로 럼주를
/오민석
때로 럼주를 마실 때가 있다. 나는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 혹은 바람둥이 헤밍웨이가 되어 세븐 마일 브리지를 건너 마이애미 비치로 애인을 만나러 간다. 총탄을 무릅쓰고 스페인 내란에 끼어들어 불의의 악마들과 싸우다 지칠 때 럼주로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일은 얼마나 시적인가. 럼주를 진탕 마시고 일어나 두통과 헛구역질에 시달려 보면 알 것이다. 대충 사는 것의 즐거움. 소주와 막걸리의 평화. 혹은 기껏해야 치맥의 자유. 시가 무기가 되지 않을 때, 사당동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인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아마나 거리에서 불법 시가를 팔아보아. 관광객들이 휙 던지고 간 유에스 달러에 훈풍이 불어 멕시코만에 노을이 붉구나. 혁명 광장에 외로운 영웅들이 어디 꽁초나 없을까 불을 찾을 때 럼주를 마신다. 술잔에 빙 두른 소금의 잔해들. 세상의 소금들은 다 어디로 가서 세상은 이리 짤까.
오민석 시인 1990년 <한길문학> 시,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외 문학평론집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외 문학이론연구서『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외 대중문화 연구서『나는 딴따라다 : 송해 평전』 외 산문집『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외 <단국문학상><부석평론상><시와경계문학상><시작문학상>등 수상

'때로'라는 단어는 '경우에 따라서' 또는 '잦지 아니하게 이따금'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경우에 따라 또는 가끔 럼주라는 의미를 가지는 제목이다. 시의 화자는 가끔 럼주를 마실 때 /체 게바라나 카스트로 혹은 바람둥이 헤밍웨이/가 된다. 그리고 불의의 악마들과 싸우다 지칠 때 럼주로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일이 시적이라고 말한다. 화자에게 럼주를 마시는 일은 대충 사는 것의 즐거움을 알려준 매개체로 읽힌다. 재미있었던 문장은 '사당동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해장을 하는 인간을 나는 믿지 않는다'라는 문장인데 이 문장은 다른 문장 럼주에서 파생 된 이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지명 까지 제신 된 문장으로 꼭 화자 자신을 지칭하는 것 같았다. 럼주를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 된 이국적 이미지가 눈에 띄었다. 다만 나는 럼주에 대해 어떤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아직 시를 읽는 법에 서툴러서 그런 거 같다. 술잔에 빙 두른 소금의 잔해. 그리고 세상의 소금들은 다 어디로 가서 세상은 이리 짤까라고 말하는 역설이 좋았다. 가끔은 일상 외의 것을 상상하기도 하는데 때로 럼주를 읽으면서 내 일상이 아닌 다른 일상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갈망이 읽혔고 좌절이 읽혔고 그렇지만 상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 읽혀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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