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블랙홀
/김정진
누군가의 의지는 다른 어딘가에서 그 사람 모르게 실제로 벌어지곤 한다 다름아닌
그 누군가의 의지 때문에
지나간 뒤에 알아차리는 사랑이라거나
미처 모르고 묻어버린 뼛조각 하나가 지빠귀의 둥지에서 뒹구는 우연이
우연히 눈을 맞대고 지나간 버스 안에
김 서린 동요 한 자락 열없이 떠오를 때
물속에 반딧불이 수중발광 켜켜이 적설하고
눈에 젖은 아스팔트 검은 때묻은 아침 이런 것 다 본 적 있을까
순간순간 비일비재한 누구의 생각과 한번 품어보았던
소용돌이 섞이는 오가는 부딪치는 인공지능 부스러기 쌓이는
골목 쓸쓸히 쓸어내다
보고 말았지
배수구 위로 천천히 떠오르는 눈코입 얼굴 아닌 것으로부터
자꾸 누군가의 얼굴 떠올리게 되는 것은
실제로 벌어지곤 하는 하고 싶었던 의지의 누군가
중첩된 꿈 안에서 미움도 사랑도 없이 노래하고 부풀린 포슬포슬 김 나는 따뜻한 모닝 토스트
커튼 아래 곰팡이 검은 때묻은 아침 때마침 길 건너오는 손과 발
불 밝히고 가만히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이미 여러 번 살아버린 오래 전의 추억도 뮛도 아니게 된 지 오래
처음이라기엔
어쩐지 익숙한 사운드 오브 블랙홀 속삭임 손바닥 위로 흘러내린 블루스 이를 데 없는
이끌림
무작정 걸었다 한도 끝도 없이 솟아오른 절벽 메타세과이어 메아리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물고기 뱃속에
잠든 지빠귀 뼈다귀 이런 돌림노래 구성진 한 가락에
떠오르고 말았지
있지 가본 적 구태여 틀릴 가능서 염두에 둔 주소도 모르고 외워서만 가는 미로 끝의 집
부득불 잊어버린 골짜기 우리 나란히 내려갈 때 열린 문틈으로
보지만 말고 들어와봐 만져봐 어때 참 부드럽지 얼굴 위로
내려앉은 안개 어른어른하는 게 꼭
너네 집 같지
여기에 서 있으면 안과 밖이 한꺼번에 보인다
위와 아래가 머리와 발이 동서와 남북이 바다와
산이 극과 극이
나란히 서서 터널 속의 어둠과 평행한 출구 끝의 빛 도달하지 못한 채 가만히 들리는 노이즈
자그마한 토끼굴 속 헤집는 손 잡으면 다시
돌아오는 일주일 마중 없이 찾아온 신기루 왜곡 굴절된 고백
한데 섞어 뭉개지고 찢어진 메시지 물속에서 웅얼거리는
닳고 닳은 목소리 귀기울여 끄집어낸 단어는 이제는 쓰지 않는 말
모르긴 몰라도 집중호우 계속되고 있었고 그런다고 컵 속 물의 양이 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었다 누군가 어렴풋이 해본 생각이 그 사람 모르게 여기에
김정진 시인 2016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산맥작품상> 수상.
어떤 의지가 우연을 만다는 다는 말이 좋았다. 우연이 꼭 우연 같지 않아서 더 우연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사운드를 검색해보면 주로 오케스트라, 밴드 등의 연주에서 듣고 느낄 수 있는 음향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니 연주에서 느낀 블랙홀이라는 말인가. 음악의 현상학에 대한 글을 읽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지휘자 첼리비다케는 '장소와 소리가 하나가 되는 생동적인 장면의 선험적 경험을 연주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결론, 소리와 리듬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템포 역시 절대적이지 않은 관계로, 결국 콘서트홀의 음향에 따라 모두 달라진다고 해석한다. 그 순간 현상학적 환원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 한다. 김정진의 시 「사운드 오브 블랙홀」을 현상학적 환원의 상태로 읽어낸다면 어떨까. 음향을 이미지와 서로 기표, 그리고 비슷한 단어의 차이를 통해 시를 풍성하게 하는 거 같다. 그렇지만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 되지 못한 느낌. 그렇지만 김정진의 시를 읽으면 몽환적인 느낌에 살아잡히곤 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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