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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시집추천, 시인추천]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12월 이달의 시인 박시교 시인 「되새김하다」외

by 꾸꾸(CuCu)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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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하다

 

 

 

 

/박시교

 

 

 

 

언제부턴가

되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걸어온 길

머문 자리

나눈 대화

맞잡았던 손

 

그 모두 마음에 밟히면서

발목 잡는 날 있다

 


그리운 사람 2 

 

 

 

/박시교

 

 

 

도봉산 아랫길 광산(壙山) 선생과 걷고 있는데

 

도서관 앞 잔디 마당에 김근태 앉아 있다

 

잔잔한 미소 띤 얼굴 어디 가냐 묻는 듯

 

아까운 사람은 왜들 일찍 떠나느냐며

 

"당신 같은 사람 몇 명만 있어도 나라 꼴이 이처럼 엉망이지는 않을 텐데"라는 내말에 "아니지, 혼자서는 힘들었지만 좀 더 살아 있었어도"라고 손사래 치는 선생

 

우리 둘 대화가 객쩍다는 듯 마냥 웃고 있는 그

 


사는 게 다 그렇다

 

 

 

/박시교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질 것이라고

 

아픔의 칼끝도 무디어질 것이라고

 

살면서 부대낀 상처 치유될 걸 믿었지

 

한때의 사랑마저도 까마득 지워지고

 

세월이 흘러가며 어루만질 애욕의 흔적

 

아직도 기다려 사는 마음은 풀밭인데

 


꽃 또는 절벽

 

 

 

 

/박시교

 

 

 

 

누구나 바라잖으리 그 삶이

꽃이기를,

 

더러는 눈부시게 활짝 핀

감탄사기를,

 

아, 하고

가슴을 때리는 순간의

절벽이기를

 


나의 아나키스트여

 

 

 

 

/박시교

 

 

 

 

누가 또 먼 길 떠날 채비 하는가 보다

 

들녘에 옷깃 여밀 바람 솔기 풀어놓고

 

연습이 필요했던 삶도 모두 다 놓아버리고

 

내 수의(壽衣)엔 기필코 주머니를 달 것이다

 

빈손이 허전하면 거기 깊이 찔러 넣고

 

조금은 거드름 피우며 느릿느릿 가리라

 

일회용 아닌 여정이 가탕키나 하든가

 

천지에 꽃 피고 지는 것도 순간의 탄식

 

내 사랑 아나키스트여 부디 홀로 가시라

 


박시교 시인 197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현대시학>추천 등단. 시집 『겨울강』외 <한국시조대상> 등 수상



비유와 상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문장을 읽고 단어를 읽고 비유 또는 문장을 읽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되돌아보는'은 가던 방향에서 몸이나 얼굴을 돌려 다시 바라보다 또는 지나온 과정을 다시 돌아보다 이다. 시에서 '되돌아보는'은 두번째 의미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걸어온 길, 머문자리, 나눈 대화, 맞잡았던 손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의미를 생성한다. 고백적이고 회상하며 반성하는 이 시에서 발목 잡는 날이 있다고 말하는 화자를 보면 과거에 어떤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구조 또는 문장의 의미를 재해석 하는 것.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새로운 쓰기가 있다면 새로운 읽기는 어떻게 하는가. 낮설게 하기가 있다면 낮설게 읽기는 어떻게 생성 되는 걸까.

 

박시교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구조를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상과 대화하면서 저곳과 이곳을 하나로 만들거나, 수의에 주머니를 만들겠다는 문장 등.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부디 홀로 가시리'였다. 죽음도 삶도 사람은 홀로 간다. 혼자라는 말. 혼자인 시간, 혼자인 공간, 모든 것은 혼자해야한다. 옆에 누가 거드러주고 도와주고 조언해주어도 결국엔 혼자다. 

 

꽃과 절벽은 어떤가. 생각해보면 꽃이든 절벽이든 어떤가. 그 차이가 무엇인가. 

 

어떠한 수사 없이 쓰여진 시를 생각해본다. 기의를 떠나 기표를 떠난 시. 그런게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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