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쳤을 때 대처하는 방법
임효빈
그 집 정원에 들어선 순간 발이 얼어붙는 줄 알았어요 나보다 먼저 안락의자를 차지한 아저씨를 봤거든요 우린 눈을 보며 서로 두려워한다는 걸 알아챘고 모른 척하기로 했죠 정원에서 서둘러 나왔어요 등 뒤에서 철거덕, 총구의 안전장치 푸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어요 쓸개가 터지는 줄 알았죠 내 쓸개는 늘 위태롭게 졸아 있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운수대통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냥 그런 때 있잖아요 어제까지 하찮은 풀이었던 게 오늘은 구름을 당겨 올만큼 환상적인 힘이 되는. 쳐다보지도 않던 지렁이 따위에 먹부림을 하는. 내 얼굴의 안경 문양이 햇볕 속에서 선글라스처럼 멋져 보이는 그런 날이었어요
나도 아저씨처럼 안락의자에 누워 꿀이나 찾던 발바닥을 까딱거리며 어깨춤을 추고 싶어요 곰탱이처럼. 지금이 전생이라고 말해줘요 나는 길쭉한 다리를 가진 비보이가 될 거예요 밤 벚꽃이 흩날이는 거리에서 비보잉으로 하얗게 태우고 거품 채운 비어도 폼 나게 한잔해야죠 전생의 내 사진이 걸린 전광판을 볼 땐 색깔 있는 안경을 쓸 거예요 흑곰으로 보이는 아저씨 에게 탕! 노래를 쏘겠어요 전생의 인연이에요 라고 말해주면서요
예감처럼 운수대통인 날 맞네요
임효빈 시인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이 있음.
마주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와 마주쳤을 때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한다. 예감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암시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미리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예감은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닌가. 화자는 정원에 들어 갔다 나온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을 대는 분명 좋은 일이 일어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고. 좋은 일이 일어나는,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가능성이 낮지만 불가능한 일에 대해 "...이면 좋겠다."라는 wish의 상태로 생각을 말한다. 그리고 예감처럼 운수대통이라고 말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마주친 대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wish다. 변하는 것은 없다. 화자는 다시 정원에 가서 안락의자를 차지 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램'뿐이다. 화자와 안락의자 그의 관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또는 더 흐릿하게 표현 되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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