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홍일표
위험한 폭발물이다 흐린 날 다음에 오는 맑은 날은
어느 낙관주의자의 마음을 만지다 녹아 사라진 팔다리처럼
폭풍 속으로 간다
지금 이곳의 몸들이 내세를 지운 즐거운 혼돈 속에서 폭발한다 꽃들이, 나무들이 절정을 향해 오늘을 똟고 솟아오른다
색과 색이, 소리와 소리가 뒤섞인다 빛과 어둠이 분리되지 않은, 생사가 하나로 뒤엉켜 타오르는 시간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 불멸의 영지에서 나는 머나먼 바깥을 잉태한다 보이지 않아서 더 또렷한, 심장의 불이 야생의 꽃으로 발화하는 풍경은 어디 있나?
몸 안의 난폭한 어둠이 타는
유황불 속에서
사라진 꽃의 모형을 만드는 숙련공이 즉흥곡의 리듬에 실종된다 집이 부서지고, 형체를 버린 파편들이 즐겁게 흩날린다
몇몇이 트랙 밖으로 걸어가고, 하늘을 터뜨려 갇혀 있던 꽃들을 꺼내지만
죽은 빛이 가리키는 곳으로
몸을 지우고 총총히 사라지는 저녁의 그림자들
머릿속 가득 죽은 새를 집어넣고 갯벌처럼 길게 눕는다 죽음의 방식으로 오늘을 수습하는 손들이 많아졌다
홍일표 시인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산문집 「사물어 사전」 등이 있음. 지리산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시賞>수상
몸 안, 머릿속 등 내적인 것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낙관주의자의 마을을 만지다 녹아 사라진 팔다리처럼" 이라는 문장처럼 낙관주의자의 마음이란 무엇인지 다소 추상적인 문장에 대해 고민하려는 찰나 "폭풍 속으로 간다"고 말한다.
사실 다소 추상적인 문장을 읽었을 때, 우리는 글을 읽어냈다는 것으로 그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생각보다 깊게 읽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고 생각해야하는데, 시간에 쫒기거나, 귀찮거나, 또는 이해했다고 착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 추상적인 문장, 또는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을 뚫고 꽃, 나무들이 절정을 향해 뚫고 솟아오른다. 이미지를 말하는 것일까. 색과 색이, 소리와 소리, 감각적인 것들이 뒤엉켜 타오르고
보이지 않아서 더 또렷한, 이런 것들이 존재론적인 물음에 해당하는 걸까. 어떤 마음, 느낌을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한 실패에 대한 노래 일까.
왜 죽은 새를 머릿속 가득 집어 넣고 갯벌처럼 길게 누울까. 무엇이 손들을 많게 했을까. 질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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