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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추천,시인추천,좋은시,문학공모전]2022년 제16회 해양문학상 금상 시부문 「바다의 밀서」박종익

by 꾸꾸(CuCu)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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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밀서

 

 

/박종익

 

 

 

아버지는 물살이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내리고

집 나간 조기 떼를 기다리시며

비밀 일기를 남기셨다

아버지는 제임스웹 망원경* 없어도

망망대해 캄캄한 우주 속을 들여다보시며

저 하늘에 별만큼이나 많은 물고기의 행적을 찾아

한 번도 밝혀지지 않은 바닷속 비밀을

허름한 수첩에 빼곡히 기록하셨다

어떤 날은 조기 대신

검푸른 물살을 건져 오시기도 하고

바다의 불청객, 해파리를 담아오시기도 했다

그물을 당겨 올라올 때까지

누구도 짠물에 절인 파도를 해독하지 못했고

파도의 높이에 따라 어판장 고깃값이 들썩였다

그물이 끌려 올라올 때 헐렁해진 그 무게만큼

고물 엔진 수리비가 떠오르고

먼바다를 달려온 행적인 기름값으로 차올랐다

툭 터진 그물코 사이로 땀으로 얼룩진

선원들의 월급이 사정없이 빠져나가는 날에는

뚫린 그물 구멍에 코를 박고

아무리 셈을 해봐도

빚구덩이 속으로 회오리치는 급물살

기름값은 고사하고 애들 노트값도 어림없다

아버지의 일당은 늘 정해진 건 없었지만

물고기들의 길목에서 번번이 허탕 쳐도

단 한 번도 바다를 원망하지 않으셨다

고기 못 잡아도

기름값이 폭풍우로 몰아쳐도

내일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에 꼭 품고 다니셨다

내일은 어떤 파도, 어떤 바람이 

아버지를 떠돌게 할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낡은 밀서를 펼치면

검푸른 파도와 물고기들이 금방 살아나

아버지의 그물 속을 기웃거린다

 

*제임스웹 망원경 : 인류가 만든 최고의 우주 망원경

 

출처 c 픽사베이

원양어선 선장인 아버지의 삶이 곧 바다에서의 삶이었다는 비유와 고달팠던 삶의 묘사한 시. 아무리 어려운 시기를 겪어도 그 시절 아버지들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했던 거 같음. 요즘으 어떤가. 요즘은 저런 끈기가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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