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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추천,시인추천,시추천,문학잡지추천]웹진 님Nim 이달의 시인 2023년 7월호 Vol.25 이승희 시인 근작시 3편 「어떤 마음에 대하여」외 2편

by 꾸꾸(CuCu) 2023.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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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 픽사베이

 

 

어떤 마음에 대하여

-감모여재도

 

 

.이승희

 

 

 

물속에 오동나무를 심는 마음이 있다 연꽃도 그런 마음 모란도 그런 마음 오리 두 마리도 그런 마음이어서

 

가만히 헤엄을 치게 하였다 그런 마음을 싣고 돛단배가 온다

 

마음에 무엇을 들이는 마음 그런 마음이 더욱 따듯하여 소나무가 자란다 바위 속을 지나 지붕 끝을 지나간다 머리를 붉은 해에 닿고서야 편안해진다

 

지붕에는 매화꽃이 피었다 잘 모르는 마음인데 잘 알 것 같은 마음이다 마치 씨앗이 백 개나 된다는 유자가 막 벌어진 것 같은데 어떤 논리가 없이 알 것 같다 이를테면 지금 여기는 너무 멀고 멀리 거기는 지금 내 앞에 와서 머무는 것 그런 것처럼 없는 이가 자꾸 나를 보러 오는 것이니

 

물속에

연꽃은 연꽃이 아니고 모란은 모란이 아니고 복숭아는 복숭아가 아니어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

그리고

거기서부터 걸어와야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지나가야 하는 것

 

높은 누대

푸른 기와

오색 꽃구름을 밟으며 오시라고

 

붉은 문을 열어두었다

슬픔을 마음껏 열어 두고

페허가 한없이 늘어나 반짝였으므로

 

그러므로

작약이 피었다

 

 

 

안방 몽유록*

 

 

 

/이승희

 

 

 

나는 지붕 위에서 그네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네를 타는 사람들은 이 산과 저 산으로

버드나무처럼 휘어졌다

몇은 매달린 줄도 없이 마을보다 큰 꽃 속으로 들어왔다 나오곤 했다

 

세상은 붉은 목단 한 송이였고

마을은 점점 소실점 끝으로 멀어져 갔다

 

목단 나무줄기를 따라

강물이 흘렀다

강물을 따라 구름이 흐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노을처럼 퍼지고 있었다

 

나는 점점 높은 계단으로 밀려가는 중이었다

그것은 마치 눈물이 자라는 것처럼

아래로부터 강물이 흘러 올라왔다

 

그네를 타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꽃 피던 마을도 지나갔고

목단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아주 멀리 있는 사람

그러니까 잠깐 공원을 걸어가는 사람

모자를 들치고 지나간 개미

혹은 모자 속에서 자라는 자두나무

 

그런 후에도 계속 멀어지는 사람

말을 잃고

자라는 버드나무처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란을 지나 걸어가는 사람

 

*조선시대 신광한의 가전체 소설 제목 변용

 

 

 

밤 배

 

 

 

/이승희

 

 

 

잠의 뒤꼍으로

 

꽃이 피듯 배가 밀려왔다

 

나의 등을 가만히 밀어왔다

 

죽은 이의 편지 같아서

 

슬프고 따듯해서

 

그렇게 배에 올랐다

 

배는 공중에 떠서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흘러갔다

 

눈이 내리듯 천천히 흘렀다

 

가는 것이 꼭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승희 시인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등이 있음. 전봉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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