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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시집추천, 시인추천, 신작시, 문예창작] 문장 웹진 2023년 11월 호 임솔아 시인 「터널에서 통화하기」외

by 꾸꾸(CuCu) 2023.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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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서 통화하기

 

 

 

/임솔아

 

 

 

그림자는 시간에 따라 작아졌다가 커졌지만

발을 뻗기에는 어둠이 부족했다.

 

나는 잘 들린다고 답하고

친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너의 차가 어디쯤에 멈춰서 있는지

보험회사에서 아직도 연락이 없는지

내가 쉴 새 없이 말하는 동안

 

뜨거운 햇볕 속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고 친구는 말한다.

움직이는 파라솔의 그림자를 따라 의자를 옮겨 놓으며

 

친구는

주말 아침 눈뜬 채로 침대에서 꾸물거리듯

 

우리가 커번디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을 기억하냐고 한다. 로비에서 단체로 조식을 먹을 때였다. 커번디시는 유능한 과학자였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자신의 유능함을 다른 이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단번에 커번디시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친구가 커번디시가 되기를 바랐던 적은 없었는데

 

나는 지도 어플을 켜서 터널을 찾아보다가

며칠 전에 꺾어온 꽃을 만져 본다.

일부는 아직 촉촉하고 일부는 버석하게 말라 있다.

나는 충분히 기다렸다 생각한다.

 

어디까지 들었냐고 친구가 묻는다

이제 가고 있다고 나는 답한다.

 


초능력

 

 

 

/임솔아

 

 

 

너의 머릿속에는 도시가 내장되어 있다. 너는 그 도시를 자주 운전해 다닌다. 도로는 교통체증이 심각하고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너는 편두통때문에 한쪽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꾹꾹 누른다.

 

애국가가 끝나고 텔레비전이 이명을 내뱉는 시간, 너는 텅 빈 도로를 내려다본다. 깊어진다는 것만으로 공기의 압력은 강해진다. 수압을 못 견딘 페트병처럼 불빛들이 우그러든다.

 

한 사람이 너의 도시를 걷고 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에 눈동자를 고정하고 있다. 그는 오늘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에는 카드 두 장과 신분증, 2달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중요한 것들은 아니라고 그는 되뇌인다.

 

2달러 지쳬는 다시 구하기 어려울 테지만 그 지폐를 이십 년 넘게 들고 다녔지만 그랬다는 것도 지금에야 알았지만 그걸 준 친구와도 그만큼 멀어졌지만 그 친구와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갔었지 돈까스를 나이프로 처음 썰어 먹었지 그 일이 나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친구가 내 어설픈 칼집에 신경 쓰지 않기만을 바랐는데

 

그는 불 꺼진 음식적 앞에 멈추어 선다. 유리창에 두 손바닥을 대고서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그는 오늘 그 자리에서 너무 많은 말을 했다.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말을 할수록 말은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되어 갔고 아무것도 아닌 말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 많은 말을 하게 되어 갔고 그러나 지갑은 하얀색이었으므로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일지 모른다. 가보았던 모든 곳을 가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생각하며 그는 지나온 곳들을 향해 나아간다. 더 이전에 갔던 곳으로, 이전보다 더 이전에 갔던 곳으로

 

너의 귀는 점점 커져 간다. 너는 모든 것이 너무 잘 들린다. 그의 옷긱이 살에 부딪치는 소리와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와 그가 낮에 동창회에서 들은 소문들과 내일 그가 내쉴 한숨소리와

 

너의 귀는 점점 커져 간다. 귀는 늘어지다가 귀를 덮어 간다. 귓속에 습기가 차고 세균이 번식하고 곰팡이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너의 도시에도 물안개가 내려앉는다. 너는 부엌에 걸어가 약을 꺼내 먹는다.

 

한 알의 약이면

폭설이 내리듯

 

도시는 하얗게 덮일 수 있다. 너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서 너의 도시가 온통 하얗게 변해 가는 것을 내다본다. 도시는 여전히 어둡고 도시는 이제 밝다. 눈발 때문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눈은 오래도록 녹지 않고

 

내일 아침이면 차들은 더욱 천천히 달릴 것이다.


임솔아 시인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이 있다.


엘레베이터나 터널에 들어가면 전화가 잘 터지지 않고는 한다. 통신의 문제가 소통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 통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 나와 타인이 서로 얼마나 소통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정황상 친구는 터널에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그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화자는 친구를 걱정하고 사고 당사자인 친구는 웬지 모르게 태평하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말만 할 뿐이다. 화자는 문득 꽃을 만지고 충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한다는 독백을 한다. 무엇을 충분히 기다렸을까. 이 문장에서 화자의 의지가 느껴졌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어둠이 필요한다. 햇빛을 피하기 위해 의자를 옮기는 것처럼 그늘 아래서의 시간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화자는 어디로 갈 것인가.

 

두번 째 시 「초능력」을 읽고 레고놀이를 떠올렸다. 시를 읽고 쓰다보면 시는 결국 레고 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설명서 대로 조립해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도 좋다. 내 머릿속 도시에 그가 너가 되는 것처럼, 머릿속 도시가 현실의 도시가 되는 것처럼. 결국 너는 나이기도 한, 이 시에서 대상이 모두 하나인 것처럼.

 

시를 읽고 쓰는 일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본다. 요즘은 그런 말이 자주 떠오른다. 하나가 더 필요하다. 한 가지만 더 있으면 된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포즈를 취하는 일과 같은 느낌. 느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설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내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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