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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시집, 시집추천, 시인추천, 시추천, 문예창작] 2025년 1월호 웹진 문장 시인 김도 「침묵의 주문서」

by 꾸꾸(CuCu)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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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주문서

 

 

 

김도

 

 

 

지금

침묵이 온다.

달이 지나면 없을

 

팝업 스토어 세 개의

음악이 섞이는 골목길을

밀려가고 밀려오는 각양각색

 

인간의 파도를 따라

걷듯이 구르는 자동차의

활짝 열린 창문.

 

지글지글 끓는

베이스. 뿜어져 나오는

다소 동물적인 욕망으로

헐떡대는 노랫말만 골라서

외고 외치는 힙합 아티스트가

 

밥을 다 먹고

입을 헹군 물도 삼키고

다시 이빨에 끼우는

이빨 모양 금붙이의

 

반짝반짝.

있을까요? 물어본다. 그럼

끄덕인다. 무조건

 

다행이에요. 침묵은

흐뭇하다. 또 올게요

다음에 다시

 

침묵은 온다.

예식장의 벨루체 홀과

르네상스 홀의 하객이 식사하는 뷔페

스테이크 철판 담당 직원을 마주하고

선 채로 굳어 버린 두툼한 사내 때문인지

유독 느긋하게 익는 여러 소의 살점들은

많이 죽었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게

 

분명하게 살아 있다는 이유로 딱딱하고

화끈하게 떠나가는 종아리의 통증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왁자지껄 사이사이를 누비는

한복 양복 일행이 오늘의 몇 번째 주인공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이

두 눈을 꽉 감아도 충분히 어둡지 못한

 

어두컴컴. 있을까요? 물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있는 것을

침묵께 드린다. 침묵은 듣는다.

미소를 짓고 침묵을 기울인다. 통째로 쏟아

흥건한 침묵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고마워요. 잘 들었어요.

그럼

 

국도를 달리는 뒷좌석 창문의 보름달은요?

나는 끄덕이고

 

그럼 도착한 곳에 내려서 듣는 귀신새는요?

끄덕인다. 그러면

 

지난 전부가 일렁이는 폐허의 겨울 모닥불이 꾸는 꿈도?

쉿.

 

쉬시시시.

꺼지는 불도?

 

안 꺼지는 별도

흐릿해지면서 어쨌든

밝아오는 날도?

 

그럼 

 

침묵은

 


김도 작가 

시집 『핵꿈』, '원시' 동인



화자는 침묵을 만난다. 침묵이 화에게 왔기 때문이다. 팝업 스토어 세 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뒤섞이는 공간에서 화자는 침묵을 만나고 침묵에게 있을까요? 묻는다.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어는 무엇일까. 팝업 스토어 세 곳과 이빨 모양 금붙이의 반짝반짝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거라면 있을까요?라는 물음 위의 이미지들과 상황은 어쩌면 화자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침묵이 오고 이런 상상이 침묵과 함께 온 것일까? 

 

아니면 침묵이 화자에게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일까. 그렇다면 화자는 왜 고개를 끄덕일까. 그것도 무조건. 침묵은 흐뭇하고 화자의 말인지 침묵의 말인지 헷갈리는 대화는 이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 어쩌면 화자가 곧 침묵이 아닐까?

 

결혼식 장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화자는 다시 침묵을 만나고 침묵과 다시 대화를 나눈다. 침묵은 어디에나 있다. 국도를 달리는 뒷좌석 창문의 보름달, 도착한 곳에 내려서 듣는 귀신새, 지난 전부가 일렁이는 폐허의 겨울 모닥불이 꾸는 꿈도.

 

침묵은 무엇일까. 침묵은 스스로 아무 말도 없이 참참히 있거나 그런 상태를 일컫는다.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

가끔 길을 걷다가 문득 내가 아닌 거 같은 순간이 찾아오거는 한다. 그럴 때는 시야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상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떠돌다가 떠나버린다. 꿈을 꾼 거 같은 순간.

 

그런 순간이 떠올랐다. 화자는 침묵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어쩌면 몽상.

 

몽상은 시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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