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원
/강혜빈
이름들 사이를 걸었다
공원이면서 무덤인
사잇길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입슬울 부딪히지 않아도
발음되는 이름
깊은 잠을 자는 건 그만큼 슬퍼서야
잠이 길어진 내게
너는 그렇게 말했는데
묘목은
무덤가에 있는 나무
사전상으로는 세 번째 의미
나무 열매를 줍는다
반쯤 열린 보라색 껍질 사이로
비온 뒤 풀 냄새가 난다
꽃을 꺾는 사람과는 도무지 친구가 될 수 없어
관리인이 나타나 말한다
다섯 시에는 문을 닫는다고
그는 검은 선글라스를 썼다
손에 든
호수 끝에서 물이 떨어진다
다섯 시에는 저도 약속이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묘원은 오전 열 시부터
무료 개방
일요일에는 관리인도 쉰다
루비 켄드릭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J. W. 헤론
메리 스크랜턴
소다 가이치
로제타 홀
어니스트 베델......
이름들 사이를 걸었다
묘비의 재료는 돌
높이 76cm 앞면30cm 옆면 13cm
손끝으로 쓸어 보면
움푹
팬 총알 자국
벤치에는 노부부가 정물처럼 앉아 있고
길을 잘못 들어선 연인들이 돌아가고
조금씩 허기를 느끼는 장면
묘원 주변 음식점:
(0.13km) 골든치즈타르트
(0.16km) 병천아우내순대족발
(0.17km) 파사주
(0.26km) 낫도그앤프라이나잇
(0.27km) 비포그레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없어요
한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떠올렸다
19번 묘지에는 큐알코드가
있지만
알고 싶지 않고
오늘은 이상하게
일요일 같고
강혜빈 시인. 문장웹진 2023년 7월호 /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의 팔레트』가 있다.
묘원이 공원처럼 꾸며 놓은 공동묘지라고 한다. 이상한 공간이다. 공원과 공동묘지를 합쳐 놓다니. 그런 공간에 대해 잘 포착한 거 같다. 시 뒷부분에 '알고 싶지 않고' 같은 혼잣말이 가라앉은 혼합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시를 쓸 때 필요하지 않는 말을 넣어야 할까. 아닐까. 시집을 찾아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입술이 닿지 않고 발음 되는 이름이 뭐가 있을까. 하늘? 좀 많은 거 같다. 기회가 되면 나도 묘원에 가보고 싶다. 그러나 굳이 찾아가고 싶지 않다.
오늘은 투고할 시를 프린트 했다. 본선까지 올랐던 곳인데 벌써 2년전이다. 요즘 동대문에 가면 도매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거기서 몇 십년을 장사한 사람이 강해서 살아남는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버티다 버티다보니 주변에서 강하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 사람은 계속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도 똑같은 거 같다. 버릴거면 미련없이 버리거나 버틸꺼면 죽을 힘을 다해 버티거나. 그래도 버티는 쪽을 선택한 것은 살면서 글쓰기나 텍스트 읽기, 특히 시를 읽고 쓰는 거 말고는 별로 재밌는게 없다.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할거나. 등단 못했도 아직까지 쓴 시들 종합해서 영어로 내가 번역해서 투고 해봐야겠다.
비트겐슈타인 책 읽고 있다. 나이가 들어야 이해되는 텍스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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